원신부님.3

한국을 떠난지 1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1997년 10월 4일 다시 아프리카로 향하는 원 신부의 바람은, 많은 동문들이 진정한 살레시안으로 살면서 살레시오 일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졸업생들은 살레시오의 귀중한 일꾼들이고, 세상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돈 보스꼬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밀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 평신도인 살레시오 가족을 기르는 데는 학교만큼 유리한 것이 없다. 살레시오의 복음전파는 교육과 함께 수행하는 것인데, 한국에는 살레시오 남녀 중고등학교가 단 하나씩밖에 없어 아쉬움이 많다. 캐냐의 경우 순전히 졸업생들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살레시오 학교가 4군데나 있다면서 원 신부는 아프리카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한국에서도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살레시오 학교를 세우고 운영할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나쁜 점이나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한 물음에 “지금 내가 한국에 발붙이지 않고 떠나서 한국의 나쁜 점을 말할 자격이 없다”며 고개를 흔든다.

이런 원 신부의 삶은 하느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삶과 같이 하느님이란 목표를 향하면서 주님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하나의 도구가 되어 ‘네’라고 응답하는데....지금 아흔이 다 되어 가는데도 어디론가 다시 떠나야 된다면 기꺼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는 쉼 없는 열정을 뿜어낸다.

아프리카에서 남은 여생 가득히 돈 보스꼬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갈 원 신부의 훈훈함이 한국의 가을을 물들인다.


7. 아프리카로 간 우리의 영원한 친구 원선오 신부 한국 방문

우리 벗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친구로 남아있는 원선오 신부님이 한국을 떠난 지 근 15년 만인 1997년 가을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 기쁨은 물론 우리 벗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커다란 기쁨이었다. 제6회 아시아 오세아니아 살레시오 동문 총회를 준비하면서 몇몇 뜻 있는 벗들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이번 방문을 통해 원신부를 아는 모든 벗들과 살레시오 가족들이 만나서 하나되는 커다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원선오 신부는 1962년 한국에 선교사로 온 이래 20여년 간 모교에서 성무감으로 일하면서 살레시안들에게는 물론 광주 시내 전체에 그 친절과 사랑이 널리 알려질 만큼 흐뭇한 사랑과 미소의 사목자였다. 수많은 벗들은 원신부의 낡은, 때론 군데군데 기운 검은 수단의 모습으로 비가오나 눈이오나 교문에서 학생들을 맞이하던 그를 기억하고 있다. 말썽을 부리는 학생이 있으면 손을 꼭 잡고 함께 울던 모습 또한 벗들에게 있어 늘 감동이었다. 또한 동창회 지도신부로서 ‘벗’지의 창간자요, ‘벗들의 큰모임’과 동문회 활성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나이 55세이던 1982년 당시 총장이던 비가노 신부의 아프리카 선교 계획에 동참하여 아프리카 케냐와 수단에서 새로이 시작된 선교사의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삶의 전반이 혼란스럽고 극한 대립만이 있는 수단에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선교에 전념하고 있다. 원선오 신부는 이번 방문 동안 호의를 베풀어준 벗들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전해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