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현 글 2

■ 살레시오 중고동창회ㅣ11회 동문회ㅣ원선오ㅣ마신부님ㅣ돈보스코

글 : 김미현

광주 살레시오 중고등학교 동문들의 부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사람에 대해 설문조사한다면, 아마도 원선오 신부가 1위가 아닐까? 도대체 원 
신부가 누구 길래 남편들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지 그들은 궁금해 한다. 어떤 동문들은 지금 원 신부가 머무르는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 계모임까지 조직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살레시오 동문들의 노래를 쫓아 그들이 기억하는 원선오 신부를 만나보자. 
  
먼저, 동문들이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원 신부의 모습은 아침 등교길에서 시작된다. 낡은, 때론 군데군데 기운 검은 수단을 입은 원 신부는 아침 등교길 교문 앞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1천 2백 명 되는 전교생을 일일이 눈인사나 악수, 따뜻한 말 한 마디로 맞았다. 그 때, 지각을 많이 하는 등 품행이 단정치 못한 아이들은 특별히 일일이 이름을 외워 다정하게 불렀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학생들도 절반 이상은 이름을 알고 있었다. 

중흥동 옛 교사 정문은 사통 팔방으로 잘 닦여진 대로와 맞닿아 있었던 관계로 아침 통학길, 출근길의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원 신부의 이와 같은 흔치 않은 교육적 열성을 차창 너머로 바라볼 수 있었고 크게 감동하여 살레시오, 고등학생들을 부러워했다. 

하루는 전남대 교수 한 사람이 살레시오 고등학교와 담을 나눠 쓰고 있던 신안동 수도원으로 찾아와, 당시 원장이던 김보록 신부(바오로, 현 정보문화센타 원장)에게 말하길 매일 아침 출근길에 볼 수 있었던 원 신부의 자세에 탄복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를 결심했고, 이제 교리를 받고 있는데 영세 때 원 신부를 꼭 대부로 모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성직자로서 한 사람의 대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아 그 교수의 청을 들어주지는 못했지만, 매일 아침마다 원 신부가 보여준 사랑의 자세는 학생들에게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바로 복음의 증거가 됐다는 것을 말해주는 일화다. 

이렇게 원 신부의 보이지 않는 선교에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세뇌(?)된 동문들은 지난 10월 3일. 원 신부가 아프리카로 돌아가기 전에 함께 모여 드린 동문 감사 미사와 다과회에서 그들 나름대로 가슴 한 구석에 간직했던 추억의 보따리를 풀었다. 동문들은 무엇보다 원 신부의 세심한 손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면 손을 꼭 잡고 함께 우셨죠. 그리고 성당에 가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박옥구 3회) 
  
"종교 시간이 일주일에 두 번 있었는데 한 시간은 슬라이드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슬라이드 볼 때는 교실이 캄캄하니까 학생들이 졸기도 하고 도망가기도 했죠. 저는 도서관으로 도망가서 책상 위에 큰 대자로 누워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 때 신부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귀에다 대고 가만히 속삭이셨습니다. 이정성 학생 일어나요." (이정성 11회) 

이렇게 귓속말로 얘기하거나 손을 꼭 잡아주던 원 신부를 기억하는 동문들은 이들 외에도 많다. 이 모습은 살레시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교도사목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부님께선 사형수에게서 엽서가 오면 고백성사를 봐주셨는데 그 때 저는 몇 개월 동안 그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강당 정문에는 교도관이 지켜 서있고 신부님과 죄수는 강당 구석에서 성사를 꿨습니다. 그 때도 신부님은 죄수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우시면서 [죄는 밉지만 이렇게 훌륭한 영혼은 정말 성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영근 4회) 
  
  원 신부의 세심한 사랑의 압권은 음악 시간인데, 11회 졸업생 김창환씨는 이렇게 표현한다. 
"음악을 통해서 학생들과 가까워지셨고 음악을 통해서 복음을 학생들 마음에 심어주셨던 분입니다. 우리는 신부님이 성경귀절에 곡을 달고 아코디언으로 반주한 노래를 통해서 유행가를 흥얼거리듯 복음을 흥얼거리게 됐습니다.” 
  

원 신부는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온 정성을 다 쏟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미 배움의 자리를 거쳐 간 젊은이들에게도 평평한 사랑의 줄을 당기고 있었다. 
“신부님께서 동문회 신문 벗지를 창간하셨어요. 또 졸업생 주소록을 제작, 발송까지 손수 다 하셨습니다. 원 선부님이야말로 동문회 활성의 주춧돌이죠." 
이렇게 동문들이 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줬다. 원 신부는 청소년을 사랑하는 용광로이고 여기서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는 모두가 복음전파라는 주물로 단단하게 굳어진다. 
  
“당시 저는 성당에 다니질 않아서 신부님은 저를 보면 몹시 서운해 하셨어요."(김용호, 8회) 김씨는 내년 3월, 실로 26년 만에 원 신부의 바람대로 세례를 받는다. 

세월의 간극을 넘어서도 원 신부의 사랑을 체감하고 있는 동문들은 지난 10월 4일 다시 아프리카로 떠나는 원 신부를 바라보며, 불뚝 나온 배로 인격을 자랑하는 자신의 나이는 잊은 채 원 신부의 세월을 아쉬워했다. 신부님을 다시 서울에서 뵈었을 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젊으셨는데 이젠 할아버지가 되셨어요. 그 감회를 말로 표현 못하죠." (이정성) 

"제가 학생 때 데모하려고 하자 제 손을 꼭 잡아 주셨어요. 그 때 그 손을 뿌리친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이제 생전의 모습으로는 마지막일텐대요.” 조성목씨 (10회)가 안타까움을 토로하자 옆에 있던 한 동문이 말을 받는다. "아니야, 16년 뒤에 한국에 다시 오신다고 하셨어." 
  
16년 뒤면 원 신부의 나이 84세. 다시 만날 원선오 신부의 건강한 모습을 기대하며, 항상 젊은이들 마음 속에 살아 있길 기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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