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부님.1

1.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성가 한 구절을 유행가 부르듯 흥얼거리게 만든 주인공 원신부, 성가집에서 우리는 ‘원선오’라는 이름을 종종 대하게 된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에 이런 작곡가가 있구나 하는 흐뭇함에 젖기도 한다는데, 바로 그 주인공은 국적을 말하기 힘든 원선오(빈첸시오 도나티)신부다.

2. 젊은이들의 음악적 영성을 불러일으킨 종교시간

원 신부가 한국에 처음 와서 눈을 뜬 새벽, 제일 먼저 들리는 소리는 교회의 종소리였다고 한다. 이것은 원신부에게 있어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8년 간 일본에 있으면서 단 한번도 접할 수 없었던 반가운 것으로 마치 이탈리아 그의 고향 마을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원 신부는 믿는 이들의 땅으로 자신을 이끈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활기찬 첫 햇살을 맞아 들였다.

3. 유럽에서 아시아로. 그리고, 다시 아프리카로

원 신부는 1928년 이탈리아 중부 해변 도시 파노에서 태어났다. 워낙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소년기에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외삼촌이 살레시오 수도회 신부였던 관계로 또리노 발도꼬의 오라또리오에 들어가면서부터 살레시오와 직접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다. 15살이 되던 해에 첫 서원을 하고 수년 간 사목실습을 한 다음 1950년에 일본 선교사로 파견된다. 1954년 일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활동하다가 8년 후인 1962년 한국으로 왔다. 

20년의 한국 생활 중 대림동에서 일한 1년을 제외하고 나머지 19년 동안은 광주 살레시오 중ㆍ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지냈다. 

그 후 1982년 당시 총장 신부였던 돈 비가노의 아프리카 프로젝트에 대한 호소를 듣고 홀연히 아프리카 케냐로 떠났다. 그 때 원 신부의 나이 55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너무 많을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염려와는 달리 정작 자신은 별 걱정을 하지 않고 일단 가고 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그 곳에서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고 만족할 수 있었다. 

4. 케냐에서 2년, 그리고 다시 수단(sudan)으로...

원 신부는 ‘편하게 머무르고 싶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생각까지도 배제한 체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보다 험하고 어려운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원 신부가 처음 일본으로 와서 그 곳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한국으로 올 때, 그 당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막 전쟁을 치른 후의 혼란한 상황이었고, 아프리카에서도 역시 비교적 평온한 케냐에 안주하지 않으며 전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휘말려 있는 수단으로 간 것이다.

원 신부는 자신의 지난 세월이 일본에서는 아이들의 스승,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의 친구, 아프리카에서는 버림받은 아이들의 어버지의 삶을 살았다고 회상한다. 돈 보스꼬가 청소년들의 스승, 벗, 아버지임을 생각할 때 평생 돈 보스꼬의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온 살레시안의 삶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