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동문회ㅣ원선오신부회상

■ 살레시오 중고동창회ㅣ11회 동문회ㅣ원선오ㅣ마신부님ㅣ돈보스코

  ■ 사랑해요 원신부님!


이 연 (17회)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원선오 신부님은 70년대 살레시오 고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에게 잊을 수 없는 분이다. 192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신부님은 1954년 일본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일본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72년 광주로 왔다. 
   
이후 1980년까지 광주 살레시오 고에서 음악, 종교교사로 활동하다 1982년 아프리카의 케냐로 갔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원 신부님은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시다. 
“이제 한국은 선교의 틀이 잡혔으니 나는 아프리카 케냐로 가서 제3의 선교를 시작해야겠다."
   
이렇게 떠난 신부님은 1994년부터 수단에서 ’울지마 톤즈’ 로 잘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와 함께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올해 아흔 한 살이 되셨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서 가난한 소년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신부님은 교문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많은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맞이했다. 아코디언 연주도 기막히게 잘 하셔서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을 들려주곤 했다. 직접 작곡하여 가르쳐 준 성가들은 40 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내 머리에 남아 있다. 

그 중 ’젠젠젠’은 학생들이 제2의 교가처럼 흥얼거렸던 곡이다. ’젠’은 Generation(世代)의 준말로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이로서 자신감을 갖고 나아가라' 는 뜻을 담고 있다. 
’젠젠젠 나가자, 젠젠젠 앞으로, 젠젠젠 이루자, 젠젠젠 하나, 이제 태양 솟는다. 새 사회를 비추라, 모든 마음 열리라, 하느님 사랑으로’ 노래 끝에 신부님이 ’뉴 제너레이션’ 하면 학생들은 ’젠’하면서 끝이 난다. 

나는 이 노래를 지금도 가끔 부르곤 한다. 특히 긴장될 때나 위축되어 있을 때 부르면서 위안을 받곤 한다. 5월에는 학교에서 성모 마리아를 위한 각종 행사를 벌인다. 그 때 부르는 노래가 '성모의 성월’이다. 
’성모의 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는 성모를 찬미할 지어다. 가장 좋은 꽃으로 성전을 꾸미고, 성모께 노래하며 자현 할 지어다.’
   
지금도 5월이 오면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곡이 너무 아름다워 외로움을 느낄 때나 홀로 오솔길을 걸을 때는 마음속에서 끄집어내어 큰 소리로 부른다. 신부님이 작곡하신 노래들은 약간 서글픈 흑인 연가풍의 노래들이 많아 힘들었던 나의 사춘기 시절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내가 좋아하는 성가는 ’엠마우스' 다. 

’서산에 노을이 고우나 누리는 어둠에 잠겼사오니, 우리와 함께 주여 드시어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주님의 길만을 재촉하시면 어느 세월에 또 뵈오리까. 누추한 집이나 따스하오니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이 밤을 쉬어 가시옵소서.’

이 노래는 어두운 밤에 홀로 어머니가 살고 있는 시골집에서 부르면 그간에 쌓였던 모든 괴로움과 지친 심신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지난 해 장동현 교장신부님의 요청으로 모교에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장래 진로에 대해 특강을 한 적이 있 다. 그 때, 아들보다 어린 후배들에게 앞서 소개한 세 곡을 직접 불러주었다. 하지만 후배들은 “엠마우스" 외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젠젠젠’은 우리 때까지만 불리었고, ’성모의 성월’ 은 가사가 모두 바뀌어 버렸다. 동창생들을 만날 때면 원 신부님과의 추억담을 빼놓을 수가 없다. 당시는 전남의 학생들이 광주로 진학했기 때문에 개성이 강하고 억센 친구들이 많았다. 1학년 때는 학생들 간에 싸움질도 빈번했는데, 학년이 높아갈수록 순한 양이 되어 갔다. 이는 모두 신부님 덕택이라 믿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말하곤 한다. 

원 신부님이 떠나던 가을 학교 체육대회에선 특별한 광경이 펼쳐졌다. 당시 가장행렬이 벌어졌을 때 각 학급마다 앞에 세운 현수막에는 "Come Back. Fr. Won!( 원선오 신부님, 돌아오세요!)” 라는 말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 때 환송했던 후배들이 졸업 30년이 된 'Home Coming Day’ 에 신부님의 광주 방문을 요청했고, 3년 전에 그 요청이 이루어졌다. 

신부님은 내란이 휩쓸고 간 수단에 청소년을 위한 학교 100개를 짓기로 했고, 우리가 초청을 했을 당시 35개의 학교가 세워져 있었다.  
 
당시 신부님은 “나를 광주에 초청하는 대신 그 비용을 수단으로 보내 주면 좋겠다. 그러면 여기서 더 많은 학교를 짓는데 쓸 수 있다” 라고 하면서 한국 방문을 사양했다고 한다. 결국 총동문회 차원에서 신부님을 초청했고, 7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졸업생들이 모여 반가움을 나눴다. 

그리고 수단에서 15개 이상의 학교를 지을 수 있는 수 억원의 돈을 모금했다. 살아있는 성자로 불리우는 원 신부님의 환영회는 말 그대로 감동의 무대였다. 연로한 신부님을 마주한 졸업생들은 수십 년만에 부모를 만난 심정으로 다들 울었다. 당연히 신부님이 작곡하여 가르쳐 주었던 아름다운 곡들도 연주되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보살펴 주신 신부님 사랑합니다. "

● 아랫줄. 
    왼 편에서 두번 째가 마신부님, 또 오른편이 원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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