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신부님.2

“돈 보스꼬의 생각, 돈 보스꼬의 정신만이 저를 지탱하여 주는 지주입니다. 어느 나라든 어떤 상황이든 돈 보스꼬와 함께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가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 그 빛을 더 발한다.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만이 그의 존재 이유가 있었다. 바로 살레시오의 생명인 청소년 가운데의 현존, 즉 아씨스텐자(assistenza)를 철저히 실천했던 것이다.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는 성무감실에 머물지 않고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놀거나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청소 시간에도 아이들과 함께 청소하며 생활 속의 작은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심어주었다. 이것은 학생과 같이 호흡하며 생활하는 돈 보스꼬의 교육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누구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하기 위해서 꼭 무슨 말을 하거나 무엇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이를 이해하기 위한 매우 간단한 방법은 그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원 신부는 ‘주님이 우리 가운데 내려와 함께 생활하셨듯이 선생님도 아이들 가운데서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이는 자신의 옛 선생님들이 자기에게 교육했던 것을 그냥 따라하는 것일 뿐이라고 겸양되이 말한다.

원 신부는 그의 교육비법인 친절함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는데 그도 인간인 이상 때로는 인내심을 잃어버렸던 적도 있다. 그 때 원 신부는 자신의 그러한 나약한 모습을 다른 이들은 겸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자기는 실제로 나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간 가운데서 인간이 되는 것을 원하는 그의 모습이 아마도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않았나 싶다.

원 신부는 그의 생활 자체로도 학생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줬는데, 그것은 바로 가난한 삶이었다. 한 번은 광주 수도원 원 신부 방에 도둑이 든 적이 있었다. 도둑은 그의 투철한 직업근성으로 방 구석구석을 뒤져봤지만 훔칠만한 값비싼 물건이 하나도 없자 방주인 만 원망하며 나오다가 붙잡혔다고 한다. 원 신부의 가난한 삶이 빚은 불쌍한 도둑 이야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계란 꾸러미나 겨울 속내의 같은 선물이 들어오면 원신부는 수도원 옆에 있었던 판자집을 찾아가 모두 나눠줬다. 또 지금은 다이어트 한다고 안 먹는 청소년들이 있는데 원 신부가 가르칠 당시엔 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 때는 학생들이 여린 가슴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식당으로 데려가 함께 식사를 하였다.

“가난한 청소년들이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했을 때 우리가 이를 갖고 있다면 줄 수 있겠고 없으면 줄 수가 없다. 하지만 있으면서도 이를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가 물건에 애착을 가지면 가질수록 청소년들과 이를 나누기가 어려워질 것이고, 그러면 결국 우리는 그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물질적인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것은 우리 마음과 활동을 제약한다.” 이것은 원 신부의 청빈에 대한 지론이다. 

지금은 사랑에 목말라하는 아프리카 수단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있는 원 신부는 살레시오회가 운영하는 ‘성요한 기술학교’에서 청소년들의 자립의 길을 도와주고 있다.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 인근에 몰려있는 약 2백만 명의 난민들은 보통 이틀에 한 번 옥수수나 단감자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성요한 기술학교의 난민촌 학생들에게도 학교에서 주는 점심 한 그릇이 유일한 식사다. 끊임없이 도움을 줘야 설 수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원 신부는 느낀 점이 많다. “줄 것이 없어도 달라고 달라고 하면 줄것이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들의 얘기를 들어줘도 줄 물건이 없다는 결과는 같아서, 겉으로 보기엔 아이들을 도와주지는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함께 나누는 과정에서 저의 맘속에 이들을 향한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이들도 그걸 느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