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관 수사

■ 살레시오 중고동창회ㅣ11회 동문회ㅣ원선오ㅣ마신부님ㅣ돈보스코

글 : 서정관 수사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질 않는 참혹한 40년 내전으로 30만 명의 피를 빨아먹은 저주의 땅. 3백만 명의 주민을 피난민으로 정처 없이 떠돌게 하는 땅. 이것이 수단의 현실이다. 2천8백 명의 국민들은 5백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부족으로 갈리고, 60% 이상의 아랍계통의 회교도와 이에 대응하는 30% 남짓의 토속적인 흑아프리카인 그리고 10% 정도의 그리스도인들. 정치적으로도 군사 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억압과 이에 대항하는 반란군. 그리고 이들을 부추기는 외국의 세력 등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난민들의 천막들과도 같이 너절하게 이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곳이다. 
  
간단하게 살펴보는 수단의 혼맥상은 이렇다. 1956년 남부의 세력들이 그 때까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북부세력, 에집트에 의해 조정되던 실권자들에 대항하여 이른바 독립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시로 참혹한 
내전은 시작된다. 

남부는 흑아프리카의 인종이라는 이유로 북부의 회교들로부터의 분리와 독립을 주장하게 되지만 오히려 엄청난 피로 땅을 적시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 회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금지라는 부수적인 결과만을 생산하게 된다. 1969년 니메르 대령에 의한 쿠테타가 성공하고, 뒤이어 남부에 자율권을 주는 협약을 맺고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여 어느 정도 평온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1983년 정책을 바꿔 회교도에게 의존하는 정치를 펴면서 이전의 협약을 일방적으로 무효화하고 코란에 근거하는 법을 새로 제정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남부의 세력은 다시 반정부 투쟁으로 돌아서게 되면서 내전의 상황은 다시 불붙게 된다. 

1985년 다른 쿠테타가 발생하여 니메르가 실권을 하고 내전의 상황은 점점 더 질곡으로 빠져들게 되는 가운데 정부군은 남부 반군들에 대한 섬멸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이게 된다. 이러는 동안 밀고 밀리는 수차례의 반복을 통해 무수히 많은 목숨이 먼지처럼 날아갔고 애꿎은 주민들은 모두 난민으로 몰려 하루하루가 기약이 없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살레시오회가 수단에 처음 진출한 것은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있었던 1980년이다. 당시 수도회는 아프리카 프로젝트라는 선교계획을 발표하고 회교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활동이 아니라, 이미 있는 소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사목활동에 목적을 두고 수단에 진출하게 된다. 따라서 처음 진출한 곳은 수단 남부의 '메리디'라는 도시로 비교적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내전의 분화구가 바로 수단 남부이었기 때문에 그 도시에서 견디지 못하고 조금 북쪽에 위치한 '톤지'라는 도시로 옮기게 되었고 내전의 불길이 이곳까지 미치자 '와우'와 '자바' 로 피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바'로 옮겨온 회원들은 반군들에 의해 모두 추방되어 '카르툼'으로 오게 된다.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은 약 4백만 명의 시민이 있는 제일의 도시로 내전의 피해를 비교적 받지 않은 회교 도시이다. 지금 이곳에는 12명의 살레시오. 회원이 거주하고 있으면서 '성요셉 공업학교'를 1993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접수했을 당시 보잘 것 없었던 이 학교가 마침 현지에 2년간 파견되어 있던 임충신 수사(마리노, 현재 서울 돈보스꼬 센타 직업전문학교 교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이탈리아 주교회의, 그리고 한국의 많은 은인들과 돈보스꼬 청소년 센타 동문들의 도움으로 현대적인 시설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 기술학교에는 원선오 신부와 공고미노 수사가 한국 살레시오로부터 파견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용접, 선반 등 8개 직종에서 15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2년 과정의 정규 기술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4개월 속성과정의 2개 반 60명에게도 같은 교육을 하고 있다.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는 것과 살레시오회의 교육적 기여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현 '무바락' 수단 대통령이 청소년 센타를 건립하도록 2만여 평의 땅을 살레시오회에 제공하였고, 이에 용기를 얻은 살레시오회는 공고미노 수사가 주축이 되어 설계와 이에 필요한 자원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제 거의 실현 단계에 와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에 대해 극한의 반감을 품고 있는 회교도 근본주의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청소년 센타의 건축허가가 나지 않는 안타까운 상태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삶의 전반에서 혼란스럽고 극한 대립만이 있는 수단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이 땅의 청소년 교육을 위해 청춘을 사르던 벽안의 바로 그 선교사들이 다시금 그렇게 비참한 상황을 살고 있는 지구 저편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새로이 기술을 가르치고, 빵을 날라다 주면서 그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렴풋이나마 확인시켜 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고 있다는 것에서 우리의 어제와 매우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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